제네시스 GV90은 왜 숫자 두 개만 감췄을까

GV90 네오룬 / 현대자동차그룹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 핵심 사항

  • 제네시스가 9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에서 GV90과 GV90 네오룬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 코치도어와 123.5kWh 배터리, 합산 490kW 파워트레인까지 사양은 끝까지 채웠지만 가격과 출시 시점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 이 차의 실제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판단은 그 두 숫자가 나오는 시점부터 가능합니다.

사양표는 끝까지 채웠다

GV90 / 현대자동차그룹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제네시스는 이번 월드 프리미어에서 아낀 게 없었다. GV90과 GV90 네오룬 두 모델을 한 무대에 동시에 올렸고,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 특별전 ‘매니페스팅 마릴린’과 기념 영화 제작 지원까지 연계해 행사 자체를 하나의 캠페인으로 만들었다. 사양 공개에 들인 공이 곧 이 차를 대하는 브랜드의 태도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세계 최초로 적용한 독립 개폐형 히든 B필러 코치 도어 ‘네오룬 아치 게이트’다. B필러 없이 앞뒤 도어가 서로 마주 보며 열리는 구조로, 신규 개발한 ‘듀얼 모션 힌지’가 슬라이딩과 회전 개폐를 함께 처리한다. 겉모습만의 디자인 장치가 아니라 문 구조 자체를 다시 짠 결정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문제는 B필러를 없앤 만큼 안전을 어떻게 메우느냐인데, 제네시스는 도어 내부에 초고강도 듀얼 스틸 빔을 넣고 탑승공간 골격을 기존 대비 1.5배 두께로 키웠으며 히든 롤케이지 구조까지 더해 B필러 차량과 동등한 충돌 안전 성능을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전복사고에 대응하는 루프 에어백을 포함해 총 12개 에어백을 탑재했다.

숫자로 보는 플래그십

GV90 실내 / 현대자동차그룹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배터리는 123.5kWh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최대 용량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7인승 GV90 기준 500km(당사 연구소 측정치)이고, 350kW급 급속충전기로 10%에서 80%까지 채우는 데 22분이 걸린다고 밝혔다. 대용량 배터리를 초대형 차체에 얹으면서 항속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지켜냈는지가 이 수치의 핵심이다.

파워트레인은 전후륜 합산 최고출력 490kW, 최대토크 800Nm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 가장 강하다. 현대차그룹 최초로 듀얼 e-LSD를 얹었고 최대 5도 후륜 조향(RWS)으로 회전반경을 중형차 수준까지 줄였다는 설명도 붙었다. 차체는 파생형이 아닌 제네시스 플래그십 전용 ‘eMP’ 플랫폼을 새로 개발해 얹었고, 전장 5,285mm·축간거리 3,245mm에 24인치 대형 단조 휠을 신는다. 4인승 VIP 트림 ‘GV90 네오룬 이그제큐티브 스위트’는 천연 우드 베니어 2열 플로어와 복사열 난방, 냉장고·테이블까지 얹었고, 투톤 한정판 ‘퍼스트 에디션’과 외장 16종·내장 각 5종의 색상 매트릭스까지 라인업을 촘촘히 짰다.

정작 비어있는 두 칸

사양표를 이렇게까지 채운 발표문에서 유독 빠진 게 있다. 가격과 국내외 출시 시점이다. 보도자료 전문을 다시 훑어봐도 이 두 숫자는 어디에도 없다. 이번 행사가 월드 프리미어인 만큼 상품성 숫자를 배제하고 사양·디자인·기술 설명에만 집중한 결과로 보이지만, 코치도어부터 색상 매트릭스까지 세세한 항목을 전부 공개해놓고 정작 구매 판단에 가장 필요한 두 칸만 비워둔 대비는 뚜렷하다.

배터리 용량과 주행거리를 나란히 놓아도 같은 결이 보인다. 123.5kWh로 500km를 가는 건 배터리 용량 대비 환산하면 약 4.05km/kWh 수준이다. 초대형 차체와 무게가 대용량 배터리가 벌어준 여유의 상당 부분을 다시 가져가는 구조라는 뜻이고, 이 역시 가격이 나와야 비로소 ‘납득할 수준인지’ 판단할 수 있는 숫자다.

안전 설명도 마찬가지로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B필러 차량과 동등한 수준의 충돌 안전 성능을 확보했다”는 표현은 제네시스 스스로의 설명이며, 발표문 어디에도 IIHS나 유로NCAP 같은 별도 공인 충돌시험 결과 인용은 없다. 틀렸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반론, 그리고 판정 기준

공정하게 보면 월드 프리미어에서 가격을 안 밝히는 건 흔한 일이다. 신차 공개와 판매 개시가 몇 달씩 벌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만큼, 이번 침묵만으로 뭔가를 숨긴다고 몰아붙이는 건 성급한 해석일 수 있다.

다만 이번 발표는 애초에 ‘이례적인 사양’을 전면에 내세운 자리였다. 세계 최초 코치도어, 현대차그룹 최대 배터리,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까지 ‘최초·최대’ 수식어를 총동원한 발표였던 만큼, 그 옆에 나란히 있어야 할 가격이라는 숫자의 빈자리도 그만큼 도드라져 보인다고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결국 이 차를 어떻게 볼지는 아직 나오지 않은 두 숫자, 가격과 출시 시점이 공개되는 순간부터 정해진다. 사양은 이미 충분히 말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사양에 얼마를 매길지, 그리고 언제 그 값을 치를 수 있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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